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🌿 틸란드시아 옆에서 쓴 조각 노트

by 2bombom 2025. 4. 17.

 

 

뿌리가 없는 틸란드시아 이미지
뿌리가 없는 틸란드시아 이미지

 

물을 안 줘도 된다고 했다.

근데 안 주면 마른다.

그래서 한 번씩 뿌려준다.

내가 기억날 때마다.

그 정도면 되는 걸까?

아직 안 죽었으니까… 되는 걸지도.

가벼운 생명, 묶이지 않은 존재

흙이 없다.

화분도 없다.

그냥 철사에 걸어놨다.

가끔 누가 물어본다.

“그거 진짜 살아 있어?”

나도 잘 모른다.

근데 죽진 않았으니까,

살고 있는 거겠지.

움직이지 않고,

말도 없고,

가끔은 방향도 바뀌지 않는데

그래도 보고 있으면

살짝 안심된다.

내가 안 보는 사이에도

쟤는 계속 그대로 있다.

그게, 괜히 좋다.

햇빛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

창가 바로 옆 말고,

그늘에 두고 있다.

직접 쬐는 건 싫어하니까

그냥 밝은 곳.

그게 맞는 거라면.

아주 느리게, 살아 있는 것처럼

자라지 않는다.

크지도 않고,

꽃도 피우지 않는다.

근데 이상하게 매일 다르게 보인다.

내 기분 탓일까?

어제는 푸르렀고

오늘은 좀… 회색에 가까운 것 같다.

물에 담그는 날은

약속처럼 고요하다.

손으로 조심조심 꺼내서

접시에 눕히고,

그 위에 물을 흘린다.

물을 마시는 건지,

그냥 지나가는 건지

모르겠다.

그래도 마른 잎이 다시 촉촉해지면

살아 있구나,

그 생각이 든다.

비 오는 날엔

창문 옆에 같이 둔다.

비를 직접 맞진 않지만

공기 중에 뭔가가 흐르면

쟤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.

틸란드시아는

내가 뭘 많이 하지 않아도 괜찮다.

사실 거의 안 한다.

근데도 그냥 거기 있다.

딱히 돌보지도 않았는데

어쩌다 보면 그대로 있다.

왜인지… 그게

멀리 있던 마음이 살짝 가까워지는 느낌이라서.

누군가에게는

‘식물 같은 것도 못 키운다’는 말이

가볍게 들릴지 몰라도

나는 알 것 같다.

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.

근데 쟤는…

그걸 가능하게 해준다.

그래서 고맙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