이끼라는 생물, 사실 관심 없을 땐 그냥 길가에 자라는 녹색 덩어리 정도로만 보였어요. 비 온 다음날 축축한 돌 위나, 나무 밑둥 주변에 퍼져 있던 그저 그런 풍경.
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‘이끼 정원’을 본 이후로,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조용해졌어요. 생각보다 예쁘고, 생각보다 깊은 존재감이랄까요. 그래서… 결국 키우기 시작했죠.
작은 유리병에 담긴 초록빛 생명. 한 마디도 하지 않지만, 묵묵히 살아가는 그 모습이 왠지 지금의 나랑 닮았어요.
이끼는 ‘식물’이지만, 다른 식물과 달라요
처음 키우면서 제일 많이 했던 실수가, 이끼도 식물이니까 햇빛이 필요하겠지? 하는 생각이었어요. 그래서 창문 가장자리, 햇살 잘 드는 곳에 뒀는데 며칠 만에 이끼 색이 노르스름하게 바래버리더라고요.
이끼는 강한 햇빛을 싫어해요. 오히려 간접광을 좋아하고, 습도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생명이에요. 빛보다 물과 공기, 그리고 조용한 환경을 원하죠.
지금은 책장 아래쪽, 간접광 들어오는 그늘진 곳에 두고 있어요. 그렇게 두니까 색도 훨씬 진해지고, 잎이 말랐다가도 서서히 다시 살아나는 게 보여요.
물, 너무 주지도 마세요. 안 주지도 마세요.
이끼는 ‘물 좋아한다’는 이미지 때문에 자꾸 듬뿍 뿌리게 되는데요, 사실… 그게 망치는 지름길이에요. 습한 환경은 좋아하지만, 축축한 물기는 싫어하는 좀 까다로운 생물이거든요.
제일 좋은 건 분무기로 가볍게 뿌리는 방식이에요. 아침저녁 하루 두 번, 짧게 분사. 그리고 유리병에 뚜껑이 있다면 하루에 한두 번은 열어줘서 환기해주는 게 좋아요. 공기 흐름 없으면 곰팡이 생기기 쉬워요.
참고로, 물 주고 1~2시간 뒤에 이끼 표면을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봤을 때 촉촉하지만 젖어 있지 않은 상태면 딱 좋아요. 말라 있으면 다시 뿌려주고, 축축하면 하루 쉬는 식으로 조절해줘야 해요.
이끼도 '환경에 적응할 시간'이 필요해요
저는 처음 들여온 날, 바로 열심히 물 주고 빛 잘 드는 곳에 두고, 예쁜 장식도 잔뜩 붙여놨어요. 근데 이상하게 몇몇 조각이 금세 시들더라고요.
그때 알았죠. 이끼는 갑자기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받아요.
- 물도 아주 소량만
- 빛도 은은하게
- 사람 손도 되도록 안 닿게
이끼는 느리고, 조용하고, 눈에 띄지 않게 자라요. 그래서 더 잘 봐야 하고, 조심해야 해요. 무관심한 척 관심을 주는 게 이끼 키우기의 핵심 같아요.
결론: 이끼는 말이 없지만, 다 느끼고 있어요
작은 유리병 안에서 자라나는 초록 이끼는 매일 크게 바뀌진 않지만, 아주 미세한 반응을 계속 보여줘요.
빛이 너무 강하면 색이 옅어지고, 물이 많으면 투명한 곰팡이 생기고, 환기를 안 하면 흙이 눅눅해지고요.
근데 그 반응을 잘 보다 보면 어느 날, 살짝 올라온 새순 하나가 눈에 띄어요.
아무 말도 없이, 조용히 자란 거죠. 그거 보면 진짜... 마음이 조용해져요.
이끼는 말도 없고, 소리도 없고, 움직이지도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생명력은 혼자 사는 삶에 꽤 깊게 스며들어요.
혹시 지금, 집 안 어딘가 조용한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 이끼 하나 들여보세요. 당장은 아무 일도 없어 보이지만, 조용히 당신 마음을 바꿔놓을지도 몰라요.